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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기스 하워드의 귀환? Unpredictable!

beny 2017. 7. 20. 14:58


2017년 7월 16일(현지시간) 대전격투게임 대회 ‘EVO 2017' 철권7 FR 부문 결승전에서 신규 캐릭터인 ’기스 하워드(Geese Howard)‘가 공개됐다. 현지 영상을 보면 ’덕후‘들의 포효를 볼 수 있는데 격투게임 팬이었던 나에게도 충분히 공감되는 충격이었다.


'기스 하워드’는 SNK라는 회사가 만든 격투게임의 보스 인물로, 만들어진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장수 캐릭터 중 하나이다. 하워드 커넥션의 총수로서 어마어마한 재력과 극한에 달하는 강인함을 소유한 절대 권력자의 설정을 가지고 있다.


악당 30년 외길 인생 기스 하워드 옹

일본의 전통 치마의 한 종류인 ‘하카마’를 착용하여 짙은 왜색을 풍기고 있어 우리에겐 다소 거부감이 생기지만 그의 강력한 남성적 매력은 그런 이질감마저 녹여버리고 만다.


사실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3D 격투게임의 본좌 ‘철권’(남코)에서, 2D 격투게임의 대표 캐릭터인 ‘기스 하워드’(SNK)를 본 다는 것은 예전엔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일이다.

뭐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게 뭐라고 글까지 써 대냐’ 라고 하겠지만 영화로 따지면 ‘아이언맨’(마블)의 토니 스타크와 ‘배트맨’(DC)의 부르스 웨인이 재력 대결을, 드라마로 따지면 ‘도깨비’의 김신(공유)과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송중기) 대위가 한 여자를 두고 다투는 상황인 것이다.



당신네들도 이런 상황이 오면 흥분 안할 수 있어?


우리에게는 이미 너무도 익숙한 ‘콜라보’ 혹은 ‘크로스오버’ (서로 다른 장르의 요소를 혼합하여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행위)는 의외로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각 캐릭터의 라이센스를 여러 회사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간의 계약사항이 분명해야 하고, 만일 콜라보 사업이 실패할 경우 원작의 이미지까지도 타격을 입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한 특약사항도 설정 해놔야 한다.


스파이더맨의 ‘어벤져스’ 합류가 오래 걸렸던 이유도 라이센스와 관련된 복잡한 사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건가?’



약 20년 전 일본이 세계의 게임시장을 거의 장악했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 대 이후 세계적인 경제 호황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생활은 윤택해졌고 자연스럽게 문화콘텐츠의 수요가 늘어가던 시기다.



아케이드 시장을 폭정(?)으로 다스렸던 80년대 일본산 게임들


일본의 게임 업체들은 단순한 유희 수단으로 여겨졌던 ‘게임’에 스토리와 캐릭터를 입혀 소비자들의 마음을 공략해 갔으며, 일본의 장기 불황이 시작되는 상황 속에서도 게임 산업만큼은 그만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 특유의 문화적 생산력이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많은 자본을 축적하게 되었던 게임 업체들은 캐릭터 개발에 더욱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그만큼 자사의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도 남달랐다. 특정 회사의 대표 캐릭터를 연상케 하는 약체 캐릭터를 자신들의 게임에 등장시켜 조롱하기도 하고, 이에 대한 복수로서 비슷한 행위들이 경쟁업체로부터 이어져 가기도 했다.


캡콤의 도발(좌)에 응수하는 SNK의 자세(우)


한마디로 지금처럼 업체 간의 ‘크로스오버’ 행위는 절대, 정말로 절대 볼 수도 상상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현재의 이런 강력한 ‘일탈행위’(?)는 현재 일본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2000년 대 들어선 이후 일본이 강하게 우위에 있었던 시장은 서양의 거대 자본에 하나씩 잠식당하게 된다. 영원할 것 같았던 일본의 전통 강호 게임 업체들도 하나씩 문을 닫거나 합병인수가 진행되었으며 일본 내의 게임 소비자들도 높은 품질의 미국산 게임에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20년 전에는 생각하기도 어려웠던 회사명들

일본의 내수경기는 ‘잃어버린 10년’을 넘어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용어가 익숙해질 정도로 장기간 악화가 이어져 가고 있어 더 이상 나라 안에서의 자기들끼리의 밥그릇 싸움은 의미가 없다. 이대로 외산 ‘진격의 거인’들의 문화침탈(?)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으리라.
이런 과감한 ‘콜라보’ 행위는 일본이 그동안 축적해 놓은 문화 콘텐츠들을, 특정 회사의 것이 아닌 오직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자산으로서 결집시켜, 세계 문화콘텐츠시장을 재탈환하려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과거 19세기에 서양 미술에서 불었던 ‘자포니즘 (Japonism)’과 70·80년 대 ‘재패니메이션 (Japanimation)’으로 대변되는 영광을 다시 누리려는 그들의 현명한 발버둥인 것이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전략을 만든 것이 뭐 어떻다는 건데?’



10대 시절 일본산 콘텐츠에 열광하며 자라났던 사람들은 이제 사회적인 부를 갖춘 30·40대로 거듭났다. 일본 입장에서는 그동안 뿌려 놓았던 벼를 수확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적 자산을 바탕으로 더욱 자극적인 결과물을 양산해 나갈 것이고 우리는 그 공격적인 마케팅에 속수무책 공략 당할 것은 자명하다.



이 청년들은 20년 뒤 일본의 미래 자원이 됩니다


(게임 ‘철권’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집안은 권력 다툼으로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간에 최순실 집안을 연상케 하는 패륜적 살인미수 행위들이 등장한다. 이런 자극적인 설정도 20여년이 지나니 무뎌질 수밖에.. 여기에 악당의 끝판 격인 ‘기스 하워드’가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시대적 흐름(?)일 것이다)



절벽에 아버지를 버리는 아들, 용암에 아들을 빠뜨리는 아버지, 개막장의 끝


세계는 전반적으로 우경화의 바람이 불고 있으며 일본 또한 2012년 이후 강력한 보수정권이 들어서 자위권까지 들먹이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는 앞으로도 더욱 노골화 될 것이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큰 자본이 필요하다. 엄청난 부가가치를 낳는 문화콘텐츠 사업은 이들의 야망을 실현시키기에 더 없는 무기임에 틀림없다.


2016년 10월 23일 육상 자위대 훈련장 사진. 21세기에 이런 장면을 보게 될줄이야...


물론 기업들이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갈리는 없지만 우리의 분별력을 흐리게 하는 역할로는 충분하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것들도 즐겁게 소비는 하되 그들의 본모습을 항상 잊지 않아야 한다. (일본에 대한 증오력 충전이 필요하면 구글에 ‘일제 만행’ 같은 것들을 한번 입력해 보시라. ‘군함도’ 같은 것도 좀 보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가져 봅시다.... 결론은 꼰대 발언 ㅎ)

2004년인가... 권상우씨가 “‘저희나라’ 보다 문화의 질이나 양이 우월한 일본에서 한국 스타들과 문화에 관심을 가져줘 감사하다“ 하고 발언한 적이 있다. 저 무식한 단어인 ‘저희나라’는 제쳐두고 일단 이 발언에 어느 부분은 동의하지 못하고 어느 부분은 동의한다.

일본에 부러운 부분은 문화적 자산의 생산과 유지보수 능력이 너무도 막강한 것에 있다. 창의적인 인물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시장이 있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창작물이 더욱 커질 수 있는 다양한 경로가 존재한다. 또한 창작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어 창작행위에만 열중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너무도 멋진 인프라 환경이다.

비상적인 발언과 행위가 자행되는 나라에서 만든 문화창작물 앞에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조차 너무도 자존심 상한다. 새 정부가 들어선 만큼 문화 부분에도 정말 많은 신경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 세계 경제규모 11위에 해당하는 나라에서 당장 먹을 밥이 없어 굶어죽는 예술가가 있다는 게 왠말인가.